<가족의 나라>- 국가의 부조리 영화비평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 살고 있던 십만여 명의 재일 코리언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인도주의를 표방한 적십자가 주도한 일이었고, 재일 코리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자민당정부는 이 "귀국사업"을 적극 지원했고, 조총련은 북한을 지상낙원으로 선전했다. 70년대까지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패전 직후의 일본도 못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고도경제성장의 그림자 속에서도 재일 코리언들은 소외된 채, 빈곤과 차별 속에서 허덕였다. 그런 그들이 "고국"(북송된 재일 코리언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한반도의 남쪽 출신이었다)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 코리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가혹한 전체주의 국가였다. (북송사업의 실체에 대해서는 테사 모리스 스즈키의 <북한행 엑서더스>라는 책이 잘 쓰여진 책으로 평가받는다. 호주인 일본학자가 쓴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영화 <가족의 나라>의 감독 양영희는 조총련 간부를 부모로 둔 재일 코리언이다. "귀국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오빠가 북한으로 건너갔고, 그 오빠가 치료 목적으로 일본에 일시적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오빠가 일본을 방문했던 기간동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뇌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3개월 한정으로 일본에 돌아온 성호. 25년만에 돌아온 일본은 성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보며,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성호에게는 북한보다 일본이 진정한 "고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병원에서는 3개월이라는 시간만으로는 뇌종양 수술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성호의 가족은 국가의 벽을 실감한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국교조차 수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성호의 가족은 백방으로 성호에게 수술을 해 줄 병원을 찾지만, 북한 당국은 갑자기 내일 당장 일본을 방문하고 있는 환자들을 귀국시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아무 이유도 전해지지 않은 채 말이다. 25년만에 상봉한 가족은 다시 한 번 생이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부의 전화 한 통으로 치료도 못 한 채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성호와 그의 가족의 부조리한 상황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특수하게 폭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국가의 폭력은 일본에도, 한국에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부조리가 아닌가? 

 성호를 감시하기 위해 일본으로 따라와 성호 가족을 따라 다니는 감시원 역할의 양익준은 이러한 국가의 폭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어떠한 감정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국가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역설하던 그는 그러나 후반에 가면서 그 자신도 북한의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톱니바퀴의 하나일 뿐이며, 가족과 국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일개인일 뿐임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의 뒤에 있는 북한이라는 국가란 무엇일까? <가족의 나라>라는 제목은 그러한 물음을 던지는 듯하다. (드라마 <착한 남자>에서 양아치의 끝을 보여준 양익준은 북한 감시원으로서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준다. 양익준 시네토크도 하던데 못 가서 아쉽다) 

 감독은 재일코리언이지만, 영화는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다. 좋은 의미에서 일본적이라는 뜻이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절제된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관객의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 단연 으뜸가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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