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는 조정과 임금을 기만한 죄로 파면당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선조는 이순신을 믿지 않았고, 끊임없이 이순신을 보챘다. 일본군보다도 선조가 더 큰 적이었다.
도원수부의 행정관이 면사첩을 들고 왔다. '면사' 두 글자뿐이었다. 다른 아무 문구도 없었다.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임금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에 대하여 죽음을 면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면사첩을 받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면사' 두 글자를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죄가없다는 것도 아니고 죄를 사면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를 죽여 마땅하지만 죽이지는 않겠다, 고 임금은 멀리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면사' 두 글자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임금의 해소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중략) 칼을 올려놓은 시렁 아래 면사첩을 걸었다. 저 칼이 나의 칼인가 임금의 칼인가. 면사첩 위 시렁에서 내 환도 두 자루는 나를 베는 임금의 칼처럼 보였다. (120, 121)
이순신을 복귀시키고 나서도 선조는 이순신을 신뢰하지 않았고, 수시로 경계했다. 왜군의 조총이나 종이를 조정으로 보내라고 보채는 선조의 투정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서 참가하고 있었다"(238)는 화자 이순신의 표현은 이순신과 선조의 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조정으로부터도 불신당하고, 수적으로 우세인 일본군은 여전히 조선을 유린하고 있고, 명군은 조선을 도울 생각이 없다. 셋째 아들 이면이 고향에서 싸우다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고독과 절망에 빠진 이순신은 죽을 자리를 구하러 간다.
전쟁 중의 일상 또한 이 소설에 잘 나타난 매력이다. 군량미를 빼돌린 군관을 처벌하고,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들을 묻는 전장의 일상 모습이 건조한 문체 속에서 더욱 서글프게 다가온다. 아무런 의미 없는 싸움 속에서 백성을 위해 싸워야 했던 이순신의 고뇌와 고독이 잘 드러난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문제점이 하나 있다. 소설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전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342)
소설의 화자 이순신이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순간이므로 말줄임표가 많은 것이겠지만, 이 부분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말줄임표를 다용하는 것은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바로 직전의 문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화자가 총을 맞은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관음포는 보살의 포구인가. 배는 격렬하게 흔들렸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는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선창 너머로 싸움은 문득 고요해 보였다"고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서술을 하던 화자가 갑자기 그 다음 문장에서는 숨을 허덕이며 말줄임표를 사용하며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 소설에서 화자는 스토리의 진행과 동시에 리얼타임으로 서사를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화자는 스토리 외부에서 서사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문장에서 총에 맞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말줄임표를 쓴 것은 문학적으로는 작위적인 장치가 아니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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